작성일 : 2022-03-04 오후 1:43:04
점자블록 따라 걷다 어르신과 충돌 ‘1만5천원’ 배상
너무나 좁았던 점자블록과 우대권 발급기 간격 때문
한 나그네가 캄캄한 밤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낯선 길인 데다 길이 험하여 걸어가기가 매우 힘들었다. 나그네가 조심조심 더듬거리고 있는데 뜻밖에도 앞쪽에서 등불이 반짝이는 게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등불 가까이에 다가간 나그네는 깜짝 놀랐다. 등불을 든 사람이 시각장애인이기 때문이었다.
시각장애인이 길을 갈 때는 흰지팡이를 짚고 간다. 흰지팡이는 탈무드에 나오는 시각장애인의 등불처럼 어두운 곳에서도 잘 보이는 야광 띠가 붙어 있어서 밤에도 잘 보인다.
▲ 시각장애인의 흰지팡이. ⓒ이복남
시각장애인의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이 흰지팡이를 이리저리 더듬어서 길 앞을 감지하므로 시각장애인에게는 길잡이가 된다. 그리고 흰지팡이는 시각장애인을 의미하므로 누구든지 흰지팡이를 보면 그 사람이 시각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 피하라는 의미도 있다.
대부분의 중앙도로에는 점자블록이 다 있다. 점자블록은 두 종류가 있는데 직진하라는 선형과 멈추라는 점형이 있다. 대부분의 점자블록은 300mm*300mm*7mm 크기의 PVC합성고무로 되어 있는데 선형은 일직선이고 점형은 작은 점이 블록하게 성형되어 있다. 아래 그림은 직진의 선형과 멈춤의 점형이 함께 표시되어 있다.
▲ 선형과 점형이 표시된 점자블록. ⓒ이복남
며칠 전 오후, 시각장애인 A 씨가 전화를 했다. A 씨가 상황은 끝났지만, 자기는 억울하다고 약간은 흥분된 목소리였다. A 씨의 이야긴즉슨 A 씨가 부산 지하철 두실역에서 흰지팡이를 짚고 선형블록을 따라가다가 누군가와 부딪쳤단다.
A 씨는 1만 5천 원을 주고 그 사건은 일단락 되었지만, 점자블록이 잘못된 것 같다며 한번 봐 달라고 했다. 자기가 알기로는 점자블록하고 자판기하고 너무 가까워서 부딪칠 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 두실역 점자 블록하고 너무 가까운 우대권 발급기. ⓒ이복남
다음날 오후에 두실역으로 가 봤다. A 씨의 말처럼 선형블록을 따라가다 보면 점형블록이 두 개 있었는데 오른쪽에 우대권 발급기가 있었다. 점형블록과 우대권 발급 사이는 30cm 쯤 되는 것 같았다. 그래서 우대권을 발급하려는 사람은 점형블록 위에 서 있을 수 밖에 없었고 우대권을 발급 받기 위해서는 돌아서 있었기에 선형블록을 따라오는 흰지팡이를 못 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역무원 실에 들어가서 필자를 소개하고 어제의 일을 물었더니, 얘기는 들었지만 어제 근무한 사람이 오늘은 비번이라서 저녁에야 온다고 했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나? 시각장애인의 복지와 생활에 대해 일가견이 있으신 에이블뉴스 서인환 컬럼니스트에게 자문을 구했다. 시각장애인은 선형블록을 따라가고 있었고 어르신은 우대권을 발급 받느라고 돌아서 있어서 흰지팡이를 보지 못했으니 누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1만 5천원에 해결했다니 다행이라며, 똥밟았다고 생각하라고 했다.
▲ 두실역에는 기둥과 자판기 사이에 점자블록이 있었다. ⓒ이복남
개가 점자블록 위에 똥을 쌌는데 시각장애인이 모르고 그 길을 갔다면 똥을 밟을 수밖에 없었을 테니 어쩌겠는가? 미국에서 어느 시각장애인이 흰지팡이를 짚고 길을 가는데 한 아가씨가 흰지팡이 보고 피하려고 하다가 넘어져서 다리를 다쳐 손해 배상을 청구했는데 시각장애인이 이겼다고 했다.
두실역을 다녀오면서 부전역에서 내렸는데 부전역은 역사도 넓었고 우대권 발급기 앞의 점자 블록도 멈춤표시의 점형블록은 6장이나 되는 등 그런대로 점자블록은 제대로 되어 있는 것 같았다. 부산역에도 가 보았다. 부산역은 아주 넓어서 점자블록이 가로세로 30cm라는데 부산역의 우대권 발급기는 선형블록에서 4m쯤 떨어져 있었다.
▲ 우대권 발급기 부산역(좌) 부전역(우). ⓒ이복남
이번 사건을 보면서 우대권을 발급 받으려는 어르신이 잘못했다고 볼 수도 없고, 물론 흰지팡이를 짚고 가는 시각장애인도 잘못하지 않았다. 문제는 우대권 발급기와 점자블록 사이가 너무 좁았다는 것이다. 이런 일은 앞으로도 얼마든지 또 생길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렇다면 뭔가 수정을 좀 해야 할 것 같았다.
며칠 후 부산교통공사 시설과에서 현장을 확인해 보니 점자블록과 우대권 발급기 간의 간격이 너무 좁아 충돌사고는 어쩔 수 없었던 것 같다고 했다. 그렇다고 점자블록을 옮기기는 어려우므로 우대권 발급기를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있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 잘못된 곳은 이렇게나마 고칠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인 것 같다.
출처 : 에이블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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