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3-28 오후 2:07:05
오늘을 '시를 읽지 않는 시대'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불리는 까닭, 시를 읽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나마 익숙함을 만들어 드리기 위하여 일주일에 한 편씩 시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오늘 소개하는 시와 산문은 네이버 블로그 '시를 읽는 아침'에 동시에 소개됩니다.[기자말] |
친절한 점자블록
- 마경덕
도시는, 손으로 읽거나 발로 읽는
두툼한 점자책이다.
스크린도어 앞에 매달린 점자를 쓰다듬다가
바닥에 깔린 올록볼록한 활자를 바라본다
뒤따라오거나 앞서 걷는 요철은 횡단보도 앞에서 멈추다가
끈질기게 이어져
엘리베이터, 화장실 앞까지 안내를 하고
그 자리에서 친절하게 기다려준다
경계선을 따라가면 입구가 나오고
문이 열려도
더듬더듬 지팡이로 읽어내는 이 책의 주인은 좀처럼 보이지 않는데
도로 곳곳에 펼쳐놓고 누구를 기다리는 것일까
도시의 지극한 배려에도
아무도 읽지 않는 노란 점자책
무거운 캐리어가 덜컹덜컹 읽고 간다
- <악어의 입속으로 들어가는 밤>, 상상인, 2022, 74~75쪽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은 어떤 세상입니까. 극단적으로 말하면, 내가 살아가고 마주하는 세상은 '나의 관심'이 머무르는 세상입니다. 나는 나의 눈(관심)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가치를 평가하게 됩니다. 내가 꽃을 좋아하면 꽃이 먼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으며, 내가 특정 브랜드의 제품을 좋아하면 내 곁을 스쳐 지나간다고 해도 그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가는 세상은 '나의 관심'이 머무르는 세상과 같을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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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경덕 시인의 시집 | |
ⓒ 상상인 |
편협하지 않다고 느낄 것입니다. 왜냐하면 '제도(규칙)'란 다수의 시선에 맞춰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보통의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편협함을 느끼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하지만, 보통의 우리도 항상 공평하다고 느끼지만은 않습니다. 보편을 벗어난 세분화된 제도와 조우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다른 타지나 제도 속을 유영할 때, 나 또한 이방인이 되었다고 느낄 것입니다.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면서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시집으로 『신발론』, 『글러브 중독자』 등이 있으며, 북한강문학상 대상, 두레문학상, 선경상상인문학상을 수상했습니다.
출처 : 오마이뉴스
해당 기사링크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817793